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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김환기, 존경한 피카소를 한국적 추상으로 극복하다

2015.12.08

[뉴스1]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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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선·면·점'전 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진제공 현대화랑)

"피카소(1881~1973) 옹 떠난 후 이렇게도 적막감이 올까."
수화 김환기(1913~1974)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인 4월10일 미국 뉴욕에서 남긴 일기에 이같이 썼다. 김환기는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를 평생 존경하면서 극복의 대상으로 삼아 창작했다. 김환기는 서구의 추상표현주의를 토착화함으로써 우리 현대미술을 세계미술의 지평에 올려놓았다고 평가받는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개막한 '김환기의 선·면·점'전에선 2016년 1월10일까지 작가의 뉴욕 체류 시기(1963~1974)를 대표하는 추상작품 22점을 선보인다.

그는 뉴욕에서 11년간 창작혼을 불태웠다.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여했다가 귀국하는 길에 잠시 들렀던 미국 뉴욕에 정착한다. 뉴욕 체류 전후로 나뉘는 김환기의 작품세계는 서양적 기법을 사용하며 동양적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로 귀결된다.

김환기가 초기에 추구한 '신사실파'란 달항아리 백자, 매화, 학 등 한국적인 서정을 모더니즘 어법으로 추상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1961년 '사상계'에 기고한 신사실파를 설명하는 글에서 "오늘의 조형예술을 만든 사람이 피카소다"며 "항상 선두에 서서 리드해 나온 피카소는 한 번도 추상을 하지 않았으나 추상의 모든 유파는 그에게 자극을 받아 변모해 나갔다"고 밝혔다.

'김환기 뉴욕 체류시절 모습 (사진제공 현대화랑)

뉴욕에 정착했던 당시 52세의 김환기는 신사실파 화풍을 버렸다. 화폭에선 구체적 형상이 사라지고 점·선·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그는 또한 직함도 버렸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이란 감투를 던져버렸다.

동양의 수묵적 느낌으로 추상화를 시도하는 것은 고된 작업이었다. 재료에 민감했던 김환기는 아라비아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인 과슈(구아슈, gouache)를 즐겨 썼다. 색조가 선명하고 부드러워 차분한 효과를 내지만 여러 번 덧칠해야 하므로 작업시간이 늘어났다. 온종일 매달려도 대작 1점을 완성하는데 4주 정도가 걸렸다. 그는 허리·목 부위에 고질적인 추간판협착증(일명 디스크)을 앓아야 했다.

아내 김향안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점화 작업과정은 ▲목화 소재의 바탕면을 바닥에 놓고 아교칠을 한다 ▲물감을 한폭 완성에 필요한 만큼 풀어 유리병에 준비한 후, 점을 먼저 찍는다. ▲점이 마르면 그 위에 다시 점을 찍는 방식으로 4~7회 덧칠한다 ▲점 하나하나를 사각형으로 돌려 싼다 등을 반복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연구소에서 선정한 20세기 한국예술의 고전이 될 미술 작품 1위에 오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비롯해 '10만개의 점', '12-V-70 #172' 등 뉴욕 체류 시기를 대표하는 추상작품 22점이 선보인다.

미술평론가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앞으로 10년 뒤면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등록문화재 대상이고 50년이 더 지나면 국보 아니면 보물 지정될 것"이라며 "지금 김환기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미래의 국보 보물을 보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가격 3000~5000원. 문의 (02)2287-3591. 다음은 전시장 전경과 주요 작품의 이미지다.

'김환기의 선·면·점'전 중 '10만개의 점' (사진제공 현대화랑)

'김환기의 선·면·점'전 중 '12-V-70 #172' (사진제공 현대화랑)

'김환기의 선·면·점'전 전시장 전경 © News1

박정환 기자(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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