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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아이는 피사체이자 동경의 대상" 캔버스 안에서만은 아이들이 커졌으면 한다는 이소흔 작가

2015.12.01

[머니위크] 최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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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ing in the gallery /사진제공=아트1

#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중요한 것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 친구 목소리는 어떠니?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친구도 나비를 수집하니?"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 애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 명이니? 몸무게는?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지?"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그걸로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어린왕자> 중에서

어른들이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거나 뒷짐을 지거나 손을 턱에 괴고 골똘히 생각하면서 작품을 감상한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기도 한다. 갤러리의 일상적인 풍경. 작품을 감상하고 갤러리를 나오는데 입구에서 바닥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한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제공=아트1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보며 어떤 소리를 듣고 있을까. 그것이 어른들이 바라보는 ‘작품’이나 ‘신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아닐까.”

이소흔 작가(31)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갤러리의 풍경보다 그 아이의 모습이 크게 자리잡았다.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아이들

이 작가의 작품 속 아이들은 큰 존재로 묘사된다. 때로는 빌딩보다도 크다. 이는 원근에 따른 표현이라기보다는 작화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다.

“제 캔버스 안에서 만큼은 아이들이 그 어떤 세상보다 커졌으면 좋겠어요. 제 눈엔 아이들이 어른보다도, 어른들이 만들어낸 커다란 건물보다도 더 크고 거대한 존재로 느껴지거든요. 피터팬 콤플렉스를 가진 한 어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방법이라고 봐주세요.”

실제로 작품을 접하면 이미지로 보는 것보다 그 부피 자체가 풍기는 느낌이 강렬하다. 이렇다보니 아이를 크게 그리고 싶은 욕구는 ‘중독’에 가깝다. 아이의 모습을 크게 그리려다보니 캔버스가 덩달아 커져버린 것. 초기에는 가로 세로가 각각 약 90cm, 65cm인 캔버스에 그렸지만 최근의 작품은 162cm, 130cm에 그려지고 있다. 맘 같아선 더 큰 캔버스에 그리고 싶지만 더 키웠다간 작업실 문을 나올 수 없어 자제(?)하고 있단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거대한 아이들을 데려다놓는 그만의 작품 스타일은 졸업 후 인도에 체류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껴 10달 가량 인도여행을 했는데 그곳에서 한 한국인 언니와 친해지게 됐고 그의 딸 ‘하진’이와 매일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의 거대함을 새삼 느낀 것. 2010년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하진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돌봐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조금 달라요. 아이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어른들의 그것보다 훨씬 다채롭고 의미 있거든요. 한 살씩 나이를 먹고 있지만 앞으론 더 아이 같아지고 싶어요.”

◆아이만 그리는 작가

이 작가가 미술을 처음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다. 미술을 특별히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미대’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미대 진학을 위해 시작한 이른바 ‘입시미술’은 그에게 끔찍했다. 예술이 아닌 기술을 가르쳐서다. 터치 하나 하나를 외우는 식이다. 사과 하나를 그려도 모두가 똑같이 그리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익힌 기술들은 대학에 가자 오히려 방해가 됐다. 그림을 그리는 선 하나하나에 묻어나야 할 개성이 사라진 것. 어른들의 몰개성에 자신마저 동화된 것 같아 속상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른들의 세계에 동화되지 않은 ‘아이들’을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이 더 아름다워 보였던 것일 뿐. 그러다보니 어느새 ‘아이들만’ 그리는 작가가 돼 버렸다. 미대에 다니던 때는 과제들이 주어지다 보니 여러 대상을 그렸지만 졸업 후 그의 작품주제는 모두 ‘아이들’이었다.

“특별히 아이들만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기보다는 아이들만 생각나고 아이들만 보여서 자연스레 아이들을 그리게 됐어요. 지금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대상은 아이들이에요.”

그는 작품 활동과 미술학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한다. 작품 활동만으로는 수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직업이 필요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미술학원 선생님을 선택했다.

학원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그에겐 영감의 원천이다. 종종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은 그에게는 큰 가르침이다. 아이들의 생각에 어른이 돼버린 자신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고민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물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닌 경우에는 별도의 주제를 정하지 않고 아이들이 그리고 싶은 것을 많이 그리도록 한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치타 가족’을 그리겠다던 한 아이가 치타 두 마리를 그려놓았길래 “가족인데 엄마랑 아빠만 있고 아기는 없느냐”고 물어보자 그 아이는 아기치타도 그렸다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두 마리 뿐이어서 재차 물어보니 아이는 “여기 있잖아요”라며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킨다. 아이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어미치타 옆으로 작은 꼬리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어미 치타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 아기치타는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도 그의 대답은 온통 ‘아이’뿐이다. 이제는 어른이 된 사람들의 어릴 적 모습을 현재의 공간에 담아보고 싶단다. 아직 결혼 계획은 없지만 차후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큰 감동들을 표현해보고 싶은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또 아이들을 만나러갔다. 그가 직접 “앞으로도 아이만 그리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그의 캔버스에서 ‘아이’는 떠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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