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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늦깎이 예술가, 음정수 조각가" 키덜트, '타인의 삶' 아로새기다

2015.10.20

[머니위크] 박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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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쌀쌀한 가을밤, 조각가 음정수씨는 작업을 마치고 버스가 끊긴 거리에서 택시를 잡았다.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택시에 오른 손님의 정체가 궁금했는지 기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하시는 분이길래 이 시간에 택시도 안 잡히는 곳에서 있었어요?" 조각하는 사람이라는 음씨의 대답이 돌아오자 택시 기사의 한마디. "아우, 배고픈 직업이네요."

예술계에 몸담은 뒤 수없이 들어온 그 말에 "네, 그렇죠"라고 음씨는 웃어 넘겼지만 마음 속에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조각가의 길에 들어설 때 배가 고플 거라는 걸 알고 시작했는지, 알고도 그걸 감수하고 선택했는지, 아니면 조각으로 돈을 벌려고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그 시절을 떠올린다.

"그 때를 더듬어보니 그런 것들은 아예 생각도 안하고 시작한 것 같아요. 제가 작업을 서른일곱쯤, 비교적 늦게 시작했어요. 어쩌면 그래서 '예술하면 배고플텐데, 힘들텐데'라는 생각을 가질 틈 없이 그저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충무로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스페이스 아트1'에서 늦깎이 예술가 음정수 작가를 만나 그만의 예술인생을 들었다.

◆ '나'만 알던 키덜트족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대학교 때 자신을 '키덜트 같은 그런 애'로 표현했다. 그렇다고 피규어나 장난감을 사서 모은 건 아니었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인 음정수씨.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걸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생각해보면 그런 관심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고 대학교 2,3학년때부터 작품을 그런 식으로 만들기 시작한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런 작품의 대상이 늘 '나 자신'이었고 '나'를 표현하는 거였죠"

그랬던 음씨가 현재 하는 작업의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배제한 '타인의 삶'이다. 자신만 바라보던 그가 언제부터 타인의 인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걸까. 사람 간의 '관계'와 사람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음씨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원 3년차 때부터다.

"당시 작품에 대해 대학원 교수들과 주변 친구들로부터 조언을 들으면서 '스스로 너무 개인적인 시점에 한정돼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래서 우선 나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 간의 관계나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고 나중에는 국가, 더 나아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까지 미쳤어요."

◆ 작업구상노트에 채우는 ‘타인들’

음씨는 자신이 바라본 한 사람의 삶을 건축물에 쓰이는 재료를 통해 형상화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사람은 죽을 때 비로소 인생사가 완성되고, 건축도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올려야 결국 완공이 되잖아요"라면서 무엇보다 인생사와 건축 모두 약간의 차이로 인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건축물을 보면 1층, 2층은 비슷해요. 우리 삶도 사실 하루하루는 비슷하잖아요. 그런데 아주 조금씩의 차이가 쌓여 개별적으로 나뉘게 돼요."

사람의 삶과 건축을 결부시켜 작업을 하다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건축에 사용되는 재료를 찾게 됐다. 나무와 철 위주인 이번 전시 작품의 재료 외에도 시멘트, 유리 등 건축에서 흔히 쓰이는 재료를 주로 이용한다. 이번 작품에서 나무를 메인으로 사용한 데 대해서는 "사람이 죽을 때 인생 이야기가 완성되는 데 육체는 없어지잖아요. 형체는 완성됐지만 육신은 없어진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무를 중심에 두고 불로 태우고 그을려 그런 느낌을 내고자 했습니다."

음씨가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가 작품을 구상하는 시간을 포함해 완성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주, 길게는 3~4개월. 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일상다반사'가 구상하는 시간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작업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또 세수를 하다가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음씨.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중에 괜찮은 것이 있으면 바로 적어둔다는 그의 스마트폰에는 '작업구상 노트'란 제하의 짧은 글들이 빼곡했다.

"취미나 재미로 작업할 때와는 다르게 직업이니까 의도적으로 계속 구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쉴 때도 구상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그는 앞으로 작업하고 싶은 특정한 삶은 없다면서 지금처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삶을 계속 표현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위인들은 있지만 굳이 제가 표현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삶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보통의, 일반적인, 제 주변에 있는 삶을 계속 표현하고 싶어요." 앞으로 그가 풀어놓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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