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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각은 요즘 유행어인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완벽한 미학이다.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엄태정(81)의 작품은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게 만든다. 형태의 본질을 추구하는 조각가로 50년째, 금속의 물질에 헌신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철과 동을 사용한 금속 조각으로 한국 추상 조각 1세대로 입지를 굳혔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 대한 경외감은 '일체의 조각적 수사'를 빼게 했다. '현대조각의 아버지' 콘스탄틴 브랑쿠시에 영향 받았다. '형이하(形而下)의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 화려하거나 시각적으로 매료될 만한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은 브랑쿠시처럼 고유한 물성을 파고들면서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성찰해왔다. “나는 쇠의 물성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 집안이 쇠를 다루는 일을 했고 어려서부터 철사를 갖고 놀았다. 내가 쇠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건방진 생각이었다. 돌아보니 쇠가 나를 불렀다. 쇠는 언제나 내게 극복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 초반 철의 물질성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도 금속 조각을 고수하며 재료와 물질을 탐구해오고 있다. 1967년 그의 대표적 철 조각 '절규'로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70년대 재료 내외부의 상반된 색과 질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구리 조각들을 발표했다. 1980-90년대에는 '천지인' 연작과 같이 수직 구조가 강화된 구리 조각들의 추상적 형태 안에 하늘과 땅과 인간과 같은 동양 사상을, 1990년대 '청동-기-시대' 연작에는 우리나라 전통 목가구나 대들보 등의 형상들을 반영했다. 2000년대부터 작가는 알루미늄 판과 철 프레임을 주재료로 조형성에 더욱 집중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수직과 수평, 면과 선의 조형성과 은빛과 검정의 색채 조화를 통해 음과 양, 시간과 공간 등 서로 다른 요소들 간의 공존과 어울림을 이야기했다.
[뉴시스] 박현주 | 2019.01.21
작고할 때까지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고암 이응노(1904~1989)의 도불 60년, 작고 3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 '원초적 조형본능'이 열리고 있다. 55세의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응노는 낡은 잡지 등을 풀로 붙인 콜라주 작업부터 문자추상, '군상' 연작까지 창조적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원초적 조형본능' 전시에서는 도불 이후의 이응노 작업 30년에 초점을 맞췄다. 양반집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상경해 서화계 대가인 김규진의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와 서예를 배웠다. 이응노는 1943년 '청죽'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대나무 그림이 빼어나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았다. 하지만 이전 동양화를 답습하는 화단의 풍조에 한계를 느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화와 서양화를 배운다. 이후 이응노는 1957년 뉴욕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을 통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된 것을 계기로 해외 미술계로 눈을 돌리고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다.
[뉴스1] 여태경 | 2019.01.21
서울 성북동에는 유난히 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이 있고 성북동 명소인 찻집 수연산방도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집도 있다. 방우산장은 시인 조지훈의 집터다. 국내 최고 작품값으로 기록된 수화 김환기도 성북동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수많은 문인, 화가들은 왜 이곳에 살았을까? 2년전 성북동으로 이사온 화가 이동재(45)는 동네의 골목과 성곽길을 걸으면서 깨달았다. "그들이 시내를 벗어나 이곳에 터를 잡은 내력은 경제적인 여건도 있었을 테지만 도심과 멀지 않으면서도 수려한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지리적인 요인이 컸으리라" 작가는"성북동 피정의 집과 덕수교회를 지나 성곽길을 올라서 와룡공원에 이르면 성북동이 한눈에 들어온다"면서 "그 가운데에 수화의 수향산방과 심우장 그리고 수연산방이 보인다. 굳이 가파른 성곽길을 오르지 않아도 집 옥상에 오르면 간송이 생전에 좋아했을, 간송미술관 뒤뜰의 소나무들이 장관으로 펼쳐져있다"고 성북동 풍광에 만족했다. 그렇게 성북동에서 '영광의 불티'를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한 걸음씩 느끼게 됐고 마음속에 품은 그들의 모습을 끄집어냈다.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마크 로스코의 선(線)은 그 단순한 표현에도 수많은 상상과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예술적이고 실험적이다. 감상으로는 쉬워 보이는 ‘그리기’지만 선의 위치와 굵기, 구성과 여백의 의도적 연출을 구상할 때 작품은 예술로 승화하기 때문이다. 이 단순함 속의 복잡한 연출, 쉬워 보이는 감상을 넘어 다양한 고민과 해석을 안겨주는 작품을 박종용(백공미술관 관장) 작가에게서 맛보는 기쁨은 남다르다. 로스코의 미학이 선에 있다면, 박 작가의 미학은 결에 있다. 그는 나무나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인 결을 통해 자연의 진실과 본질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 2019.01.18
"황무지를 개간하는 심정으로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해나갈 것입니다." 단색 '부조회화' 작가로 불리는 남춘모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남 작가는 올해 6월 독일 코블렌츠 루드비히미술관 전시를 앞두고 최근작들을 먼저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루드비히미술관은 앤디 워홀 등 팝아트 거장들의 작품과 피카소의 작품을 다량 소장하고 있는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관 중 하나로 쾰른과 코블렌츠 등에 있다.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17일 만난 남 작가는 "제 작품의 큰 테마는 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양화는 물감을 화면 전체에 덮는 반면 우리 조상들은 몇개의 선만으로 여백의 공간감을 표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면서 "선에 공간감을 불어넣을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입체적인 선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네나 세잔이 하나의 풍경을 빛의 변화에 따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그렸다면 저는 입체의 그림 하나를 가지고, 한 화면에 빛의 변화를 다 담은 것이다"라고 했다. 남춘모는 선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공간에 구현해 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평면의 회화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인 'ㄷ'형을 고안했다. 광목천을 나무틀에 고정시키고 합성수지를 발라 건조한 후 일정 크기로 자른 'ㄷ'형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붙여 패턴화된 공간을 만든다. 이후 검정과 흰색, 빨강과 파랑 등 단색 아크릴 물감을 칠해 작품을 완성한다. 대략 한 달 정도 걸리는 길고도 지난한 작업이다.
[뉴스1] 여태경 | 2019.01.18
“그림자 드리운, 사라져가는 골목의 애잔함을 말 대신 이미지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진가 강재훈(59)의 개인전 ‘섀도 앨리(Shadow Alley)-그림자 든 골목’이 18일 서울 역삼동 사진미술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서 개막한다. ‘그림자 골목’이라는 뜻의 섀도앨리는 강 작가가 2010년부터 재개발되기 시작한 서울 약현(중림·봉래동)과 만리재(아현·공덕동) 주변을 작업한 사진전이다.
[뉴시스] 조수정 | 2019.01.18
꼬리표가 붙어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일이다. 할리우드 스타 배우 브래드 피트가 작품을 샀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그걸로 기억되는 것은 난감한 일"이라고 하지만 도예가 이헌정(52)을 설명할때 꼭 따라붙는 수식어다. 2009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디자인 바젤 아트페어'때였다. 이후 그는 미술시장에서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브래드 피트는 당시 그의 '아트 벤치'를 컬렉션했다. 감각있는 셀럽이 반할 만큼 현대적이고 독창적이다. 도예의 이미지를 깬다. 세라믹과 콘크리트를 혼합해 조각이면서도 실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영역을 개척했다. 세계적 디자인 페어를 통해 가구 디자인으로도 호평 받았고, 지난 2011년 일우스페이스 '건축적 모형 The Model of Architecture'에 참가, 도예를 설치 미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청계천의 세계 최대 도자벽화인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도예, 조각, 건축, 설치 미술을 넘나드는 이헌정 개인전이 서울 대한항공 빌딩 1층 일우스페이스 새해 첫 전시로 열린다. 오는 23일부터 '서핑 Surfing'을 타이틀로 아트 퍼니처, 세라믹 조각, 항아리, 오브제 등 신작 20여점을 선보인다
[뉴시스] 박현주 | 2019.01.17
“인간은 하루에 무수한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되죠. 어떤 선택은 정말 잘 해서 후회가 없고, 어떤 선택은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후회를 안고 가기도 하잖아요. 여러 선택의 경계에 있는 우리의 삶을 ‘하루’라는 시간의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자는 전시입니다.” 찢겨진 펜스, 수확을 마친 어떤 공간에 서있는 허수아비, 공사 중인 지하철 역사에 서 있는 사람···. 작가의 사진은 딱 봐도 눈으로, 카메라로 찍은 그대로가 아니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리는 작품들이다. 사진가이면서 디자이너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강석(49) 디자인 안채 대표가 이런 사진들로 서울 반포동 갤러리 마크에서 ‘경계의 서(敍)’ 전시를 열었다. 작가는 농촌, 지하철 등 여러 공간들에서 2년 간 다양한 기법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에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효과를 반복하고 수십 차례에 걸쳐 색 변화를 줬다.
[뉴시스] 조수정 | 2019.01.17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양반집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19세때인 1922년 서울로 상경, 서화계 대가인 김규진을 찾아가 간청했고, 결국 그의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와 서예를 배웠다. 대나무를 잘 그렸다. 1924년 '청죽(晴竹)'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선전에서 '묵죽화'로 몇 차례 입선하여 '대나무 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스승에게 죽사(竹史)라는 호도 받았다. 하지만 옛 동양화를 그대로 답습할 뿐인 화단의 풍조에 한계를 느꼈다. 1936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미쓰바야시 제이게츠(松林桂月)에게 일본화를,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현대적인 미술교육을 통해 서양화를 배웠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온 이응노는 일본미술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 고유 화풍을 강조하는 ‘단구미술원’을 조직했다. '고암화숙'을 차리고 홍익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에도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이 시기 이응노는 구상에서 벗어난 반추상의 수묵화를 실험하기 시작한다.
[뉴시스] 박현주 | 2019.01.16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얻었다. 그날의 그 짐을 떨치고 싶었다.하루도 거르지 않고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사진을 찍었다.그리고 그 이미지가 한지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그날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스며들어 사라지는 것처럼···.”
[뉴시스] 조수정 | 201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