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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美 시애틀박물관으로부터 ‘덕종어보’ 환수

[머니투데이] 양승희 기자 | 2014.12.16

미국에 있는 ‘덕종어보’가 내년 3월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환수가 완료되면 내년 상반기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를 통해 일반 시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미국 시애틀미술관의 반환 합의에 따라 덕종어보와 어보에 매달린 끈인 ‘인수(印綬)’를 함께 기증받게 됐다고 16일 밝혔다. 어보(御寶)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으로, 덕종어보는 1471년 제작된 뒤 1924년까지 종묘에 보관됐다가 국외로 반출됐다. 문화재청은 2013년 7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해 덕종어보가 진품임을 확인했다. 지난 7월 덕종어보 반환을 우호적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입장을 시애틀미술관에 전달했으며, 이후 직접 반환 협의에 나섰다. 덕종어보는 미국의 문화재 애호가 고 토마스 스팀슨이 1962년 뉴욕에서 구매한 것으로 이듬해 시애틀미술관에 기증됐다. 시애틀미술관 측은 기증자의 유족에게 동의를 구하는 한편, 미술관 이사회의 승인을 받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반환에 합의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덕종어보의 환수는 문화재청이 외국 소장기관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우호적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모범사례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지난해 9월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이 LA카운티박물관에서 압수한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의 환수를 위해 지속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수사 절차가 마무리되면 내년 초에 국내로 반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비틀즈' 존 레논이 직접 쓴 글·그림, 美 경매서 30억에 낙찰

[머니투데이] 이슈팀 황성태 | 2014.06.05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직접 쓴 글과 그림들이 30억원에 가까운 금액에 낙찰됐다. 미국 NBC방송은 4일(현지시간) 존 레논의 글과 그림 등 유작 89점이 이날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총 290만달러(약 29억5800만원)에 낙찰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애초 예상된 총 낙찰가 85만달러~120만달러(약 8억6700만원~약 12억2400만원)보다 2배 이상 높다. 이번 경매에 나온 작품들은 1960년대 중반에 출판된 존 레논의 책 '인 히즈 온 라이트'(In His Own Write), '어 스패냐드 인 더 웍스'(A Spaniard in the Works)에 실려 있는 작품들의 원본이다. 당시 책 출판을 담당했던 톰 매슐러가 반세기 동안 작품들을 소유하다 경매에 내 놓았다. 경매에 나온 유작 중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은 존 레논이 타히티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쓴 9쪽 분량의 소설 '더 싱귤라지 익스피리언스 오브 미스 앤 더필드'(The Singularge Experience of Miss Anne Duffield)다. 이 소설은 세계적 추리소설 중 하나인 '셜록 홈즈'를 패러디해 완성한 것으로 20만9000달러(약 2억1400만원)에 팔렸다. 1쪽 당 약 2380만원인 셈이다. 이 외에 1964년 혹은 1965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안경을 쓴 기타 연주자 그림은 10만9375달러(약 1억1150만원), 소년과 6마리의 새를 그린 그림은 2만7500달러(약 2805만원)에 낙찰됐다. 한편 비틀즈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 존 레논은 1980년 12월8일 한 팬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치가 강탈한 피카소 미술품 발견…창고에서?

[머니투데이] 이슈팀 이해진 기자 | 2013.11.04

독일 나치 정권이 강탈한 미술품 1500여점이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약탈 미술품은 뮌헨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발견됐다. 여기에는 피카소, 샤갈, 마티스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됐다. 총 1500여점의 이 약탈 미술품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3억5000만달러(약 1조4300억원)에 달한다. 미술품들은 2011년 초 스위스에서 뮌헨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한 80대 남성이 세관 신고를 하던 중 발견됐다. 세관은 별다른 소득이 없는 그의 은행 계좌에 수십만 유로가 있는 것을 수상히 여겨 그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창고에서 미술품을 발견했다. 현장에 있던 한 세관 관계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침실에서 욕실까지 미술품들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림을 소장하던 있던 코넬리우스 구를리트는 나치 시절 유명 미술품 거래상이었던 힐데브라트 구를리트의 아들로 밝혀졌다. 힐데브란트는 나치가 '퇴폐예술'로 낙인찍고 강제로 몰수한 작품들의 처리를 담당했고 아들에게 소장품을 넘겼다. 미술품은 2차 세계대전으로 대부분 파괴됐으며 코넬리우스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미술품을 팔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작품의 진짜 주인을 찾지 못하면 다시 코넬리우스 소유로 돌아가게 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락방의 '짝퉁' 그림이 수백억원대 고흐 작품?

[머니투데이] 하세린 기자 | 2013.09.10

'짝퉁'인줄 알고 다락방에 넣어뒀던 그림이 125년 만에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진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측이 1888년에 그려진 '해 질 녘 몽마르주에서'라는 작품을 고흐의 진품이라며 공개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남동부의 도시 아를에서 오크나무가 심어진 평야를 배경으로 한 해 질 녘 풍경은 고흐가 '해바라기''아를의 반 고흐의 방' 등 대표적인 작품을 쏟아냈던 말년에 그린 것이다. 런던과 뉴욕의 디킨슨 갤러리 관장인 제임스 라운델은 작품의 예상가격에 대해 "현재 정확한 가격을 알 순 없지만, 수천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라운델은 "간혹 고흐의 초기 작품이 발견되는 경우는 있지만, 성숙기 때 작품이 나타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라면서도 "해당 작품이 '해바라기'와 같은 상징적 위치에 있진 않다"고 했다. 크기면에서 비슷한 '해바라기'(1888년·91×72cm)의 경우 1987년 경매에서 3990만달러(약 430억원)에 팔렸다. 작품은 미술상이었던 테오 반 고흐가 1901년까지 소장하고 있다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08년 한 노르웨이 미술품 수집인이 구매했는데, 곧 가짜라는 말을 듣고 1970년 사망할 때까지 다락방에 보관했다. 이후 현재 소유주가 그림을 구매했는데, 진품 판정은 그의 끈질긴 노력에 따른 결과였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주인은 1991년에 처음으로 반 고흐 미술관에 찾아가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명해달라고 청했다. 당시 작품은 '가짜'로 판명났다. 그러나 주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2년 후 미술관을 다시 찾았다. 이후 10년 만에 작품은 '진품'으로 판정됐다. 미술관 관계자는 "그동안 진품을 판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신기술이 생겨 이를 토대로 감식한 결과, 작품이 진품으로 판정됐다"고 말했다. '해 질 녘 몽마르주에서'의 캔버스와 밑칠이 당시 고흐가 그렸던 유화와 같은 종류인 점, 작품명이 남동생 테오의 1890년 수집기록에 있는 점, 그림 뒤편에 수집 작품번호인 '180'이라는 숫자가 쓰인 점이 진품 판명의 근거가 됐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美 클리블랜드미술관에 '한국실'·· 100년만의 결실

[머니투데이] 선승혜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 2013.08.24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은 설립 100년 만에 최초로 한국실을 지난 6월 오픈했다. 일본실 한편에 케이스로 전시되던 한국미술이 제 공간을 찾은 감격적인 순간이다. 재미동포들은 감격의 눈물로, 미국인들은 호기심의 눈빛으로 한국실 오픈을 맞이했다. 나는 2010년 한국일본미술큐레이터로 부임하여 전시계획을 세웠다. 2011년 성균관대학교로 이직한 이후에는 컨설팅큐레이터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전시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자문했다. 국외에 한국 문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책임을 무사히 마치며 이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쉰다. 1913년 개관 100주년사업으로, 1999년 세계적인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클리블랜드미술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아시아관이 전면 재편되면서, 한국국제교류기금의 지원을 받아 한국실이 최초로 독립 공간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어려운 점도 있었다. 한국실 위치가 일본실을 통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것이 문제였다. 대문의 위치가 중요한 한국 정서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며칠을 고민 끝에 묘안을 제시했다. 한일 미술을 동시에 관할하는 큐레이터로서, 한일 공통 문화인 불교미술로 중간지대를 제안했다. 수차례 프레젠테이션과 토의를 거쳐, 한국과 일본실은 입구를 공유하면서, 양 옆으로 한국실과 일본실이 펼쳐지게 되었다. 전화위복으로 한국실은 원래 계획된 공간에 한일불교미술실 이라는 추가 공간을 갖게 된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 문화의 국외 전시 스토리가 한편 쓰여 졌다. 난관을 넘어서 클리블랜드미술관의 한국실은 다부지게 출발했다. 100여 년간 수집한 소장품만으로 한국실의 서막을 열었다. 루이스 세브란스가 한국에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위해 돈을 기부하고, 그 답례로 한국에서 받은 고려청자를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설립을 위해 기증한 한국문화재를 시작으로, 셔먼 리 박사와 마이클 커닝햄이라는 두 선배 큐레이터들이 평생을 통해 하나씩 수집한 한국문화재를 선보이게 됐다. 국외미술관들이 한국의 국립박물관에서 국보를 빌어 화려하게 오픈한 것과 반대로, 조용하지만 내실 있게 출발했다. 한국미술 소장품은 300여 점 내외로 작은 규모지만, 최고만을 수집한다는 수집정책으로 한국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이 있다. 특히 한국실 오픈에 전시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화가 김시의 '한림제설도'(1584)와 조선 후기 '칠보산병풍'은 국보급 작품이다. 분청으로 만들어진 태항아리는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구입한 '책거리병풍'이 2014년 봄 100주년 행사에 맞춰 전시될 예정이다. 앞으로 국외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요 미술관에 한국미술큐레이터를 늘려야 한다. 최고의 인재가 한국문화를 위해 일하는 기회를 늘려야 하는 것이 한국 정부와 주요 재단의 역할이다. 그 전문가들은 전통과 현대가 함께 미래를 만들어내는 용광로라는 것을 발신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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