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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별세한 원로미술가 고 천경자 화백이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던 1991년 당시 지인에게 썼던 친필 편지가 공개됐다.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절필한 것으로 알려진 천 화백은 이 편지에서 "차원이 다른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미발표된 작품이 있을 가능성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25일 김종근 미술평론가가 공개한 천 화백의 친필편지는 1991년 6월 지인에게 쓴 한 장짜리 분량이다. '미인도' 위작 논란이 발생한 지 두 달가량이 지난 시점에서 작성된 것이다.천 화백은 편지에서 "제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앞으로 보다 차원이 다른 작품세계를 염원하면서 노력을 하고 작품들을 위해 남은 생명을 불태울 각오"라고 썼다. 이로 인해 미술계에선 알려진 것과 달리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지속해 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미술 시장에서는 위작 논란으로 절필을 선언한 천 화백의 미발표작이 없다는 이유로 작가의 사망이 작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술시장 관계자는 그러나 "만약 미국에서 작업했던 미발표작이 나올 경우 작품가격의 향후 판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개된 편지에는 또 "감사하다는 편지를 드리고 싶었지만 10여 년 동안 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어 펜이 잘 잡혀지지 않았다"며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저의 불행한 사건이 가끔 식도 부분의 둔통을 줄 때가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당시 위작 논란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천 화백의 심경을 드러나 있다. 천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미인도'를 놓고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해 위작 논란이 일었다. 한국화랑협회감정에서 진품이라는 결론이 나자, 그는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절필을 선언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천 화백이 지난 8월 별세했고 그 사실이 뒤늦게 지난 22일 국내에 알려졌다. art@
[뉴스1] 박정환 | 2015.10.26
아트스페이스 정미소에서 ‘미디어 극장(Welcome to Media Space) 2015’의 일환으로 11얼 1일까지 <빛의 정원>展을 개최한다.
[아트1] 이서연 | 2015.10.26
서울 소공로 금산갤러리가 28일부터 권여현(54) 개인전을 연다. '숲'과 '오필리아' 등 작가가 10여년 간 상징적 기호처럼 담아낸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가 보여주는 숲은 마법, 꿈, 혹은 악몽의 공간이자 수난과 망각의 장이다. 숲이 주는 고요함 속에는 거꾸로 떠다니거나 나뭇가지들 속에서 잠든, 덤불 사이로 걸어오거나 덩굴의 그물 속에 사로잡혀 있는 형상들이 긴장감을 드러낸다. 형상들은 신화적 존재, 과거의 철학자를 상징하는 동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체 등 역사적 전형, 철학적 레퍼런스, 과거와 현재, 시공간을 초월한 상징적 존재들이다. 녹색 숲과 푸른 물 안에서 나무 덩굴에 사로잡힌 회화는 편안하지 않다. 회화 영상 10여점도 선보인다. 02-3789-6317 [email protected]
[뉴시스] 박현주 | 2015.10.25
'천경자 생태' '천경자 미인도' 고 천경자 화백이 그린 '생태'는 우글우글한 뱀 그림이다. '생태'는 천경자 화백이 지난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가진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그는 당시 이 작품으로 일약 '화단의 스타작가'로 뛰어올랐다. '생태'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돼 있다. 천 화백은 대표 여성작가로 승승장구하다 1991년 일명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붓을 꺾었다. 이 사건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작품에 대해 천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는 주장을 펼친 화단 측과 위작 의혹을 제기한 천 화백이 벌인 진품 시비 사건이다. 화단 측과 대립하던 천 화백은 당시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맏딸 이씨가 사는 뉴욕으로 간 뒤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웠고 이후 외부와 접촉을 끊었던 천 화백은 지난 8월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상설 전시 중인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전에선 천경자 화백이 기증한 대표작 '생태'(1951)를 비롯해 '여인들'(1964), '바다의 찬가'(1965), '황혼의 통곡'(1995) 등 93점의 작품 중 최근 몇 년간 미공개됐던 작품 3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천 화백이 쓴 수필집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작가의 삶과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email protected]
[머니위크] 박세령 | 2015.10.23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미국에서 작고한 사실이 22일 뒤늦게 알려지면서 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 가격이 얼마나 더 오를 지 여부에 미술계의 관심이 쏠린다. ◇관련기사 -원로화가 천경자 별세…예술원 수당은 사망설로 지난해 2월 정지(종합2보) -원로 화가 천경자 별세…그의 작품 세계는(종합) -고 천경자 화백, 유골로 돼 만난 피붙이같은 작품들 -원로 미술작가 천경자 화백 두달전 뉴욕서 별세 -미술경매 1위 이응노(작품수)·김환기(총액)...제일 비싼 작품은? 미술계에 따르면 천 화백의 작품 가격은 타계 소식에도 크게 상승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천 화백의 평균 호당 가격은 8250만원으로 지난해 1532만원에 비해 이미 크게 오른 상황이다. 미술시장 한 관계자는 "'막(幕)은 내리고'의 경우 지난 7월14일 K옥션에서 8억 6000만원에 낙찰돼 호당 가격 상승에 크게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2014년 2월 천 화백의 사망설이 돌면서 이미 작품 시세에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천 화백의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초원Ⅱ'(1978, 105.5×130㎝)이다. 이 작품은 이국의 자연과 풍물이 주는 시각적 쾌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초원Ⅱ'(1978, 105.5×130㎝)는 2007년 12억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2009년 같은 금액으로 다시 거래됐다. 천 화백의 작품 중 상위 낙찰가를 기록한 경매 10건을 분석하면 K옥션과 서울옥션을 통해 5억원부터 12억원까지 거래됐다. 상위 낙찰액 작품은 2회 거래된 '초원Ⅱ'를 비롯해 '원'(園), '막(幕)은내리고', '여인'(1977년작), '모자를 쓴 여인', '미모사향기', '꽃과나비', '여인'(1982년작), '사월' 등 총 9작품이다. 천 화백의 작품은 1998년부터 올해 10월5일 현재까지 총 569건(중복 작품 포함)이 출품됐고, 402건이 낙찰돼 70.65%의 낙찰률을 보였다. 김영석 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평균 호당가격은 8250만원이나 작품 주제나 채색 재료에 따라서 가격이 심하게 차이난다"며 "인물을 그린 채색화가 가장 비싸게 거래되고 동식물을 그린 수묵담채화가 가장 저렴해, 이들의 호당 가격은 4425만원이나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뉴스1] 박정환 | 2015.10.23
20세기 후반 한국화의 지형도를 완전히 변화시킨 작가, 황창배를 회상하는 <‘우리다움’을 고집하던 황창배를 기억하다>展이 금보성아트센터에서 23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황창배(1947-2001)를 비롯해 그의 동료와 친구, 후배, 제자 등 총 38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독특한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아트1] 이서연 | 2015.10.23
천경자 화백, 지난 8월 뉴욕 맨하튼 자택서 타계…향년 91세. 뱀과 꽃과 여인을 강렬한 색채로 그려 동양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천경자 화백이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1세. 천 화백의 맏딸인 이혜선씨(70·섬유디자이너)는 지난 21일 한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며 천 화백의 별세 소식을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천 화백의 시신은 화장해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히 장례를 치렀으며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완료했다. 천 화백이 1998년 미국에 가면서 기증한 작품 93점을 받아 상설전시를 연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이씨가 8월20일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찾아왔었으나 타계 소식을 함구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해 밝히지 못했다"며 "조만간 간략한 추모 절차를 준비할 것"이라고 22일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02년 신축 개관전 '천경자의 혼'을 열고 지난 10여년 간 상설 전시로 진행해왔으며 지난해 8월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로 작품을 전면 교체한 뒤 현재까지 전시를 진행 중이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천 화백은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유를 뒤로 하고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 이혼과 불륜, 여동생의 죽음을 거치며 고통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해외 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70~80년대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이국적인 색채를 덧입은 그의 화풍은 그를 독창적인 화풍을 갖춘 여류화가로 거듭나게 했다. 그러나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한 자신의 그림 '미인도'에 대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한국화랑협회 감정에서 진품이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그는 비난을 받다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국내에서 딸 이씨가 사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천씨는 이후 한 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석에 누운 천 화백에 대해 그동안 사망설, 식물인간설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천 화백은 국내의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감흥을 주는 예술가였다. 절친했던 고 박경리 선생은 시 '천경자를 노래함'을 통해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email protected]
[머니투데이] 김유진 | 2015.10.22
우리나라의 대표 여류 미술작가인 천경자(91·사진) 화백이 두달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맏딸 이혜선(70)씨가 밝혔다. 향년 91세. 22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에서 함께 살며 천 화백을 간호해온 이 씨는 "지난 8월 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면서 "어머니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씨는 천 화백의 유골이 안치된 장소에 대해선 함구했다. 지난해 2월에도 천 화백의 생사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 예술원이 천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수당 지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예술원 관계자는 "미국 뉴욕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천씨의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예술원 회원에게 주는 매달 180만원의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고 했다. 당시 이혜선 씨는 "어머니는 살아계시다"면서도 천화백의 모습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고인은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동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 간다.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祖父)가 입선하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老婦)가 입선하면서 화단에 들어섰다.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나온 우글우글한 뱀 그림 '생태'(生態)로 일약 화단의 스타작가로 뛰어올랐다. 이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되어 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절필선언에 이르렀다.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내 그림이 아니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화제를 모았다. 맏딸 이혜선씨가 사는 뉴욕으로 간 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다가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운 뒤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뉴스1] 박정환 | 2015.10.22
천경자(91)화백이 두 달 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미술계와 소식이 끊겼던 천 화백은 1년 전부터 생사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뉴욕에서 함께 살며 어머니를 간호한 맏딸 이혜선(70)씨는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면서 "어머니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전했다고 조선일보가 22일 보도했다. 이씨는 천 화백의 유골이 안치된 장소에 대해선 함구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 화백은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 간다.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祖父)'가 입선하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작품 '노부(老婦)'가 입선하면서 화단에 들어섰다.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나온 우글우글한 뱀 그림 '생태(生態)'로 일약 화단의 스타작가로 뛰어올랐다. 이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되어 있다. 대표 여성작가로 승승장구하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붓을 꺾기에 이르렀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맏딸 이씨가 사는 뉴욕으로 간 뒤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웠고 이후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에게 지급하던 수당 180만원을 중단하면서 생사여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어머니를 예술원 회원에서 제외해 달라"고 예술원에 요청한 맏딸 이씨는 "어머니는 살아계시다"면서도 천화백의 모습 등을 공개하지 않아 "혹시 이미 돌아가신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했다. 한편 딸 이씨는 천 화백의 그림에 무척 신경을 썼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 7월 개관한 여성평등도서관에 천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자 "미술관에 기증한 그림을 외부로 돌리면 안 된다"고 지적하며 전시가 끝나기도 전에 철수시키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수장고에 있는 천 화백 그림의 보관 상태를 우려하기도 했다. 7월21일 "어머니 상태가 안 좋아져 미국에서 나올 수가 없다"면서 "서울시립미술관 수장고에 어머니 그림이 잘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기자에게 해 와, 천 화백의 지인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수장고를 살펴보기도 했다. 이씨는 국내 미술품 경매에서 천 화백의 작품 값이 치솟는 것은 비정상이고, 가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8월 18일 기자에게 전화해 '미인도 위작' 그림에 대해 "그 미인도는 어머니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목소리 톤을 높였었다. '8월6일 돌아가셨다'는 것과 달리 그때도 딸은 천 화백의 사망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email protected]
[뉴시스] 박현주 | 2015.10.22
서울 압구정 갤러리 바톤이 23일부터 한국계 미국작가 수잔 송(40)의 '인터발( Intervals)'전을 연다. 학교나 사무실 벽이 연상되지만 볼수록 이상한 작품이다. 벽이 찢어지거나 벗겨진 듯 또는 겹쳐있는 듯한 입체감까지 작용해 '매직 아이'를 보는 듯하다. 안과 밖, 상부와 하부, 전면과 후면의 위치가 시시각각 변하며 계속 공간을 드러낸다. 아크릴로만 그린 이전 작업과 달리 다공성 암석으로 만든 석분(pumice)를 혼합해 여러 번 덧칠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공간'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더한 작품은 단단한 재질감까지 드러내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